박이사한테 전화가 왔어요. 마케팅 일인가 했어요.
광고 대행, 뷰티 고객 응대, 웨딩까지 손댔던 사람이에요. 회사 마케팅도 그 사람이 하고요. 일 못하는 사람은 아닌데, 그 무렵 개인 사업이 한 번 접힌 뒤라 목소리가 평소랑 달랐어요. 무슨 일인지는 안 적어요. 그 사람 앞에서 실패를 글감으로 쓰고 싶지 않아서요.
대표님, 운세앱도 만들 수 있어요?
왜요.
아니 요즘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요.
나루는 그 전화에서 시작했어요.
챗GPT 켜면 위로하는 말은 바로 나오잖아요. 박이사는 그걸 안 켰어요. 같이 일하는 저한테, 아침에 눌러볼 수 있는 운세앱을 물어봤어요. 기능 명세가 아니었어요. 좀 힘드니까 볼 게 있으면 좋겠다는 쪽에 가까웠죠.
앱 말고 GPT 쓰라는 소리
개발자 만나면 비슷한 말을 많이 들어요. 인공지능 시대에 앱은 끝났고 SaaS도 끝났고, GPT면 된다고. 랜딩은 ChatGPT가 쓰고 코드는 클로드가 짜 준다는 이야기도 이제 지겨워요.
전 그 말을, 앞으로 앱을 아무도 안 깐다는 뜻으로 안 들어요. 대화창으로 끝나는 일을 굳이 설치하고 회원가입 시키고 구독까지 받는 제품으로 만들지 말라는 쪽에 가깝죠. 메모나 번역은 솔직히 GPT가 더 빨라요. 그런 거 올해 또 만들 생각 없어요.
그래서 반대로 봤어요. 챗봇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박이사가 굳이 앱으로 갖고 싶어 한 일이 뭔지.
운세는 이상해요. 틀린 줄 알아도 보거든요. 중앙일보가 롯데멤버스 라임으로 19~39세 5천 명한테 물었더니 운세·사주 본다는 답이 74%였어요. 그 기사에서 업계가 잡는 한국 모바일 운세 시장이 대략 3천억. 포스텔러만 가입 900만, 월 활성 142만이라고 나와 있고요.
없는 시장이 아니에요. 점신, 헬로우봇, 천명, 사주GPT, 사주핑. 플레이스토어에 사주 운세만 쳐도 첫 화면이 가득해요. ChatGPT에 사주 봐달라고 치는 사람도 늘었고요.
그래도 운세를 고른 건 문장을 잘 써서가 아니에요. 숫자가 안 속으니까예요.
나루의 오늘 운세는 언어 모델이 지어내지 않아요. 만세력으로 사주를 계산해요. 양력 음력, 윤달, 진태양시, 절기. 같은 날 같은 사람이면 결과가 같아요. GPT에 생일을 넣으면 말할 때마다 조금 달라지거든요. 그건 상담이지 명리가 아니에요.
인공지능은 풀이 문장 다듬는 데 써요. 계산은 엔진이 하고, 노을이랑 달이 그걸 받아서 이야기해요. 친구 초대하고 커플로 이어주고, 가입 없이 웹에서도 열리게 해 뒀어요. 박이사가 원한 건 똑똑한 챗봇이 아니었어요. 힘낼 때 눌러볼 자리였죠.
하루에 운세앱이 몇 개나 올라오나요
운세앱만 집계한 하루 등록 수는 못 찾았어요. 있는 숫자만 적어요.
42matters 기준으로 올해 9월 14일 구글 플레이에 앱이 약 257만 개 있고, 하루 평균 2,384개가 새로 올라와요. 지난주 15,649개, 지난달 88,593개. 애플까지 합치면 양대 스토어에 하루에 5천 개 가까운 앱이 생겨요.
물론 그게 다 사주앱은 아니에요. 다만 올해만 해도 사주GPT, 사주핑, 유어사주, 오늘운처럼 이름에 AI나 GPT를 붙인 사주·타로 앱이 계속 올라왔어요. 코드 짜 주는 생성형 AI가 있으니 운세앱 하나 만드는 비용이 예전 같지 않아요.
그 한가운데에 나루를 올렸어요. 잘한 일인지는 모르겠어요. 플레이스토어 앱 4분의 1은 다운로드가 100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스토어는 매일 붐비고, 박이사 한 통은 그 숫자랑 상관없어요.
왜 잠그지 않았나요
운세앱 보면 보통 오늘 운세 두 줄만 공짜고, 그다음부터 광고 다섯 번이거나 코인이거나 월 구독이에요. 헬로우봇이 누적 판매 40만 회를 말하는 시장이에요. 유료가 없다는 소리가 아니고요.
나루는 사주, 타로, 관상, 손금, 궁합, 별자리, 작명, 꿈해몽, 길일을 가입 없이 보게 해 뒀어요. 무료 풀이에서 사진은 서버로 안 올려요. 관상이랑 손금 기본은 폰 안에서 끝나요.
사는 게 힘들어서 운세 보고 싶다는 사람한테 첫 화면에서 카드 내밀 수는 없었어요. GPT는 가입 전에 질문을 받잖아요. 그 기본값이 생긴 뒤에 운세만 자물쇠부터 채우면 그냥 끄거든요. 힘들어서 온 사람일수록 더요.
코인 상점은 있어요. 이상형 얼굴, 아바타, 더 깊은 풀이. 그건 나중에 써보고 결정해도 되고요. 일단 만세력이 자기 이야기로 읽히는지 보게 하고 싶었어요.
잘한 건지는 아직 몰라요
올해는 뭐든 AI를 붙여야 말이 되는 분위기예요. 우리는 그래도 설치가 필요한 운세앱을 골랐어요. 계기는 리포트가 아니었어요. 사업이 접힌 뒤에도 현장 나오던 사람이, 사는 게 힘들어서 운세 만들어 달라는 전화였어요.
계산은 만세력으로. 풀이는 사람이 읽게. 첫 화면은 잠그지 말 것. 이게 맞는지 틀리는지는 쓰는 사람이 알려 줘요. 제가 여기서 맞다고 우기면 이미 진 거예요.
다음엔 빠른 MVP가 나오기까지를 쓰려 해요. 주말에 GPT로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엔진 붙이고 캐릭터 넣고 웹이랑 앱을 같이 열 때까지 어디가 느렸는지를 적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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